지난해 2월 말,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아파서 입사 당일 온보딩에 참석하지 못해서 입사하기도 전에 잘릴 걱정을 했던 터였다. 다행히 사정을 봐주신 HR 담당자분께서 입사일을 늦춰주셨고 3월 7일 첫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합격 후 하게 된 업무는 LQA(Linguistic Quality Assurance)라고 하는 게임 내에서 언어의 품질을 검수하는 게임 테스터였다. 사실 게임을 잘 하지 않는 내게는 너무 생소한 분야였지만 게임 산업에 대한 관심과 소설을 읽는 것을 즐기는 내 장점을 내보인 것을 바탕으로 합류할 수 있었다.
실력이 부족한 건 둘째치고, 당시 내 자신이 너무 작아져서 특별한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속상했던 기억이 점차 떠오른다. 일본 내에서도 외자계 회사였기에 회사 내에서는 영어를 많이 사용해야 했고 친구와의 일상 대화로는 영어를 할 수 있겠지만 회사 동료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은 마치 7살 어린아이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영어 실력이 그 정도보다 더 미흡했을 것이 분명하기에. 텍스트 위주의 영어 공부와 대학 시절 2개월의 어학연수 정도가 전부였으니말이다.
일본에 갔는데 일본인들보다 푸른 눈의 외국인들을 많이 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의문이 들다가도 일본어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동료들은 또 일본어로 말을 걸어온다. 일본어의 실력도 형편없었던 나는 영어권 동료에겐 일본어를 사용하고 아시아권 동료에게는 영어를 사용하기로 나만의 방안을 생각해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을 수 있지만, 그때는 업무도 익숙하지 않고 외국어로 소통하려 하니까 모든 게 어려웠다.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외국인 동료에게 스몰토크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으이그)
업무적으로는 한국에서도 접해보지 못했던 콘솔 게임을 더불어 스마트폰 게임, 스팀 게임 등 다양한 게임기기로 테스터로서의 업무를 했다.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닌텐도까지 모든 걸 접해볼 수 있었고 게임을 즐기지는 않지만 어쩌다 한 번 하게 되면 꼭 끝을 보고 싶어 하는 나로선 꽤 재미있던 환경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을 들으면서, 세상에는 정말 많은 형태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귀한 경험이었다.
그들은 당연히 여겨왔던 삶이 내게는 당연하지 않은 부러운 상황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에 대학원을 온 조선족 테스터는 중국어, 영어, 한국어를 할 수 있었고 홍콩 국적의 테스터 또한 중국어는 물론이거니와 영어, 일본어 모두 할 수 있는 그런 대단한 이들과 내가 함께 해도 되는 걸까? 의구심을 품은 날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모르게 지속적으로 자격지심을 마주했던 것 같다.
하루는 퇴근 후 집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나나치킨 하나 사서 집에서 먹고 있는데 속상해서 울다가, 부모님 전화가 와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서 그대로 사진을 찍어서 우는중이라며 장난하듯 보냈다. 화면 속 내 모습이 웃겨서 또 웃고, 울다가 웃다가 감정의 격변기가 가장 많이 발현되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엔 지나갈 것이라는 걸 그때의 나도 분명 알았다. 그럼에도 무모하게 준비 없이 달려들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생각보다 나의 영어와 일본어에는 쿠션어가 없어 무례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다는 반성이 늘어나던 나날들이었다. 빨리 쿠션어를 외워야지, 빨리 JLPT 공부해야지, 빨리 게임 스토리를 익혀야지, 빨리빨리, 빨리,, 또 한국에서 급하게만 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어디에 있든 결국엔 나는 나였던 것이다. 결국엔 내 안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진작 깨달았지만 당시의 난 여전히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지 못했다.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면 못할게 없을텐데, 그걸 알면서도. |